※ 장문
※ 개인 해석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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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가?
...그런 거라면 저 두 드래곤한테나 가지 그래, 난 살면서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으니까.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이야기가 꿈 이야기라고들 하지. 그래, 난 할 만한 이야기가 그게 전부다, 애초에 말하고 싶지도 않아.
그게 아니라면 푸념 섞인 이야기 밖에 없다, 그마저도 내가 대화에 서투르고.
...뭐, 괜찮다면야. 염치 불고하고 잠깐 실례하지.
이 세계에서, 내게는 장점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군.
음? 아니, 스스로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다, 분명히 나에게는 장점이 있다. 다만 문득 생각이 들었을 뿐이지.
이 이상한 세계는 나에게 장점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적어도 이 곳의 기준에서는 말이다.
분명히 나는 장점이 있다. ...그래, 내 능력도 포함해서.
하지만 다들 그것을 장점이 아니라고 부정하거든, 이 세계에 맞지 않는다면서. 내가 에브리아 밖 외계에서라도 왔다는 말인가.
이 세계에서는, 이 세계는, 하면서 잘도 떠들어대지만 아마 그들도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
나 원. 언제였던가, 다른 이들처럼 어둠을 따르는 누군가가 말했다. 너는 근성 하나 만큼은 참 대단하다며 감탄인지 질린 것인지 모를 말투로 말했었지.
남들과 달리 아직도 빛을 꿈꾼다며 말이다.
비아냥일지도 모르겠지만 ㅡ 사실 분명히 비아냥이었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지. 내가 끈기 있는 성격이라는 것도, 남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도 말이다.
우리는 어둠이 만발한 세상에서 태어났다. 소수는 빛을 바라고 대다수는 그들이 침묵하길 바라는 세상이지.
그리고 나는 빛을 바라는 소수에 해당되었고.
그러다보니 나는 저절로 고립되었다, 도태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때때로 외롭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편했다. 적어도 조용하니, 몽상에 빠지는 데에는 좋았으니까.
그래, 몽상.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들면 오직 나의 생각만이 보이고 들리게 된다.
이런 걸 사색이라 부르는 거겠지. 거기서 더욱 깊이 빠져들면 나의 염원, 내가 바라던 모습이 내가 사는 세상을 가려주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내 머릿 속에 있던 것들이 눈 앞에서 펼쳐지지. 현실 세계에선 말도 안되고 이상하게만 느껴질 것들이, 내 세상에서, 아주 잠시나마 현실이 된다.
내가 이상해진 건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지, 누군가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기 전까지는.
그 누군가는, 나의 특징을 알아주고 장점으로 인정해준 드래곤이었다. 이것은 나의 특별한 점이라고, 단순한 백일몽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지. 살면서 딱 두 번 들어본 말이야.
그러니 나는 빛이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던 그 드래곤을 따르기로 했다. 그 따뜻한 빛을, 알 속의 단편적인 기억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느껴봤으니.
...그러고 보니 다른 하나는 누구였더라. 목소리가 참 예뻤지. 더 듣고 싶었는데. ...어쨌건 간에, 아쉽긴 해도 이젠 내가 상관할 사람은 아니겠지.
어쩌면 그냥 내 꿈 속에서 본 드래곤일지도 모르고, 이게 제일 가능성이 높겠지.
하나 확실한 것은, 나는 세상에 빛이 있기를 바란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꿈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언제나.
분명 빛이 있는 세상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곳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드디어, 이 구구절절한 설명을 끝마친 지금은 결론을 말할 수 있다.
이 곳에 들어온 게 조금 후회가 되는군, 정말 조금.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좋은 선택이었지. 나를, 그리고 모두를 위한 일이니까.
하지만 우선, 시끄럽다.
여긴 정말 시끄럽다. 특히 저 검은 드래곤 말인데,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질 않나, 내가 만만하게 보였는지는 몰라도 자꾸 나를 못살게 굴지를 않나... 마음에 안 들어.
...아, 그래. 루시오라고 했었나, 내가 졸거나 사색에 잠겨 있으면 몰래 내 꿈을 이상하게 뒤틀어버린다. 안 그래도 이상한 내 공간이 기괴하게 변해버리지.
게다가, 저 하얀 드래곤도 다소 시끄러운 것은 마찬가지고.
... 그래, 피데스, 피데스였나. 고맙군, 다른 드래곤의 이름을 자주 떠올리지 않는 편이라.
루시오보다야 점잖지만 문제는 날아오를 때마다 천둥같은 굉음이 난다는 점이다, 아무리 깊게 사색에 빠져 있어도 번뜩 정신이 들 정도로.
깐깐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좋게 말해주고 싶지만,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어울리지.
그냥, 둘 다 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물론 이 세상에서 사라지라는 말은 아니지만. 난 혼자가 좋거든, 편하고.
영원히 이 공간 안에 갇혀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어, 무엇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게 된다고 해도 좋아.
설령 그게 날 외롭게 한다고 해도 말이야.
...그런 눈으로 보는 건 그만하지 그래. 물론 지금 그럴 생각은 없다, 그 정도로 무책임하진 않아.
오히려, 목적이 생기면 의욕이나 오기가 생기는 법이더군. 그러니 조금 시끄러워도 참아낼 수 있는 거겠지.
...그런데, 너. "
문득, 오벡스의 입에서 무심코 부름이 나왔다.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 지 정리하지도 못했고, 애초에 이 생각에 대한 확신조차도 들지 않았지만 입이 먼저 나간 것이었다.
" 용무가 있으신지요. "
그 드래곤의, 깨진 보옥 아래 피곤한 눈이 몽상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침묵. 말한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리고 잠시 뒤, 머릿 속에서 판단과 정리를 끝낸 오벡스가 머쓱하게 어깨를 들썩이고는 말했다,
" 아니, 잠시 착각해서. "
" 착각이요? "
" 데자뷰지, 평소에도 가끔씩 일어난다. 내 머리는 현실이 상상과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느껴지면 멋대로 들뜨거든. "
플로레의 지친 무표정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그런 말을 지금 하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라고 그 의문은, 기억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풀렸다.
" 우리 전에 만난 적 없었지, 안 그래? "
" ... "
" 기억이라는 건 정말 쉽게 왜곡되니까. 단순한 상상을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착각하는 일도 많아. "
" ...그렇네요. 만난 적 없었습니다. "
플로레가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나즈막히 대답했다.
" 그랬나? "
이에 대해서, 오벡스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었다.
" 네. 그랬습니다. "
같은 답이 다시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 기억은 정말 허황된 상상이군, 빛이 있는 세계를 바라는 건 우리 다섯 밖에 없을 테니.
오벡스가 짧게 탄성을 냈다. 상황을 넘어가기 위한 헛웃음인지, 아니면 약간 자조하는 한숨인지는 자기 자신도 몰랐다.
" 그나저나, 의외로군. 너도 그리 대화를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
" 그렇죠, 잠자코 듣거나 말하는 건 생각보다 힘드니까요. "
" ...그럼 왜 물어본 거지? "
몽상가, 오벡스가 의아하게 물었다.
"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했거든요. 늘 이상한 세계를 꿈꾸는 사람은, 현실을 어떻게 생각할 지도요. "
" ...넌 기억을 읽는다고 했었나, 그럼 내 입으로 들을 필요도 없었을 텐데. "
" 읽는 것과 듣는 것은 다르니까요. "
" ...그런가. "
무어라 딴지를 걸 수는 있었지만, 더 얘기할 기력은 없던 오벡스가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어쨌건 간에 더 말 시키지 말고 갔으면 좋겠군,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 좋으니. 매사에 무관심한 이 드래곤의 표정을 보고 오벡스가 작게 기대했다.
" ...그러고 보니, 제 이름은 알고 있으신지요. 방금 자기 소개를 하였지만. "
그리고 그 작은 기대는 처참히 부숴져버렸다, 이런.
" 플로레. 방금 들은 이름을 잊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
" 의외군요, 흘려듣고 계셨던 것 같았는데. "
" ...그 정도로 타인에게 무관심하진 않아. "
오벡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물론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많지는 않지만, 아예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 당신은 참 장미같은 드래곤이네요. 한꺼풀 벗겨내면, 새로운 면이 있으니까요. "
" ...보통 그런 드래곤을 장미에 비유하나? "
플로레가 작게 웃었다, 평소라면 생각하지도 못하게 화사했다. 비록 피곤해보이는 인상은 지워지지 않았지만.
" 비유를 어떻게 하든 이해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보통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
" ...그렇긴 하지. "
" 보통과 정반대되는 생각이야말로 보통 다음으로 많이 하는 생각이에요. 단순히 반대가 아니라, 상자 바깥에서 생각해보는 게 당신에게도 중요할 거에요, 당신의 상상의 공간에서도요. "
" ... "
이 드래곤은 무관심하게 보여도 남의 본질을 빠르게 파악했다
무엇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지 금새 눈치채고, 그것으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헛점을 찌른다. 그렇게 사람들을 사로잡고 흔들리게 만드는 성격이로군. 칼바람 사이의 갈대에게 지지대가 되어주지만, 어쩌면 본인이 또 다른 칼바람이 될 수도 있는 존재.
요컨데, 남을 곧잘 바로잡아 주지만 또한 입맛대로 휘두르는 재능이 있다.
잘못 걸리면 큰일이 나겠군, 다소 거리를 두는 편이 좋겠지. 오벡스가 생각했다.
" 참 이상한 드래곤이군... "
" ...누굴 말씀하시는 거죠? "
" 그 쪽도 나도.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가 이상한 드래곤이지. "
어둠이 만발한 세계에서는 빛을 바라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그러니 너도 이상하고 나도 이상한 것이지.
그리고 저들도. 몽상가의 푸른 눈이, 그의 시선 밖에 있던 두 드래곤을 향해 힐끔거렸다
플로레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가 풀렸다. 이마 위 깨진 보석이 반짝이려다, 이내 빛을 잃어버렸다. 그래, 그건 사실이지. 괴이하다거나 불길하다는 것보단 이상하다는 표현이 훨 낫다.
" 말이 새서 미안하군. 조언은 고맙지만, 내 생각은 내 몫이니 스스로 생각해보겠다. "
" 그래요. 하지만 제 의견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을 거에요. "
그 말을 끝으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어색한 침묵, 안 그래도 조용한 두 드래곤은 무어라 말을 꺼낼지 몰랐다.
다만 둘 모두 하나 만큼은 확실히 직감하고 있었다. 이 드래곤, 나와 잘 맞기엔 꽤나 힘들겠구나.
오벡스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 곳에는 맘 놓고 이야기를 할 만한 드래곤이 없어, 그건 저 쪽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건 존재는 이름도 빛도 없는 동산에서 만난 어떤 드래곤이 마지막이었다. 몇 달? 어쩌면 몇 년 전이었던가. 언제였든 간에, 정말로 오래 전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이상한 것들끼리 잘 지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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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에브폼 오벡스랑 플로레로 써봤습니다. 피데스랑 루시오도 등장시키고 싶었지만 아직 캐해가 덜 되서...
처음에는 가벼운 일상 느낌으로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좀 무거워졌네요, 원래 진지한 거 잘 쓰는 사람은 아닌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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