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브리아 폼 오벡스와 플로레. )
( ※ 본편 게임의 평행세계 설정입니다. )
( ※ 좀 많이 깁니다. )
어둠이 만연한 세상이었다.
...이 세상에서 빛의 의미는 무엇일까?
빛도 없고 이름도 없는 동산에서 몽상가가 생각했다. 이 세계는 정말 이상해.
수많은 이들이 빛을 필요로 하며 부르짖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많은 이들이 빛을 혐오하며 어둠 속에 숨는다, 스스로의 몸을 깎아내리게 할 어둠에.
" 뭐, 그러한 덕에 상상하는 걸 방해받지 않는 것 만큼은 좋지만. " ㅡ 몽상가, 오벡스가 생각에 취해 저도 모르게 말했다.
오벡스는 빛 한 줄기 찾기도 힘든 이 세계에서 태어났다. 어둠의 고통을 참아낸 자들만이 살아있을 자격이 주어지는 세상, 그렇지 못하는 자들은 이겨낸 자들의 손에 쓰러지거나, 어떻게든 빛을 찾아 숨었다.
그는 이 중에서 빛을 찾아 숨어버린 자들에 해당되었다.
몽상가로서 그가 창조한 상상의 공간 안에서, 오벡스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그 안에서라면 빛과 생명이 만발한 세계에서 살 수 있었고, 보거나 듣고 싶은 것은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가 상상만 한다면 뭐든지.
오벡스는 눈을 감고 그가 서 있는 이름 없는 동산이 빛으로 가득한 모습을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일곱 빛의 아름다운 띠가 수놓아지고, 그 밑으로 푸른 들판과 작은 숲, 숲 안에 몰래 숨겨진 꽃밭. 많은 드래곤들이 꽃을 따고 나무 열매를 먹으며 동산을 돌아다녔고, 모두 하나같이 생기가 넘쳤다.
꿈만 같은 상상의 풍경이 주변으로 퍼지며 공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마치 예술처럼 아름다운 풍경, 하지만 손을 대면 흐려질 듯이 불안정했다. 오벡스는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집중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뒤에서 들려온 발자국 소리에 집중이 흐트러지자 상상의 풍경도 덩달아 흐려져 갔다.
아, 정말. 오벡스는 짜증을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나무가 서 있었다.
" ...? "
" 이런 곳에서 혼자 무얼 하고 계시는 겁니까. "
" ...나무가 말을 하네. "
" 나무요? 흠. 안타깝지만, 전 그냥 나무가 아니랍니다. "
이런 나무가 있다는 것도 상상했었나? 말을 거는 나무? 아니, 그러지 않았다. 그런 기억은 없었다. 오벡스는 차분히 기억을 되새기고, 자신이 만들어 낸 상상을 거두었다.
그것은 드래곤이었다. 고목과 아주 닮은 드래곤. 검은 털 사이로 금이 가 있는 금빛 보석이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에는 피곤해보이지만, 밤하늘에 떠오른 빛을 품은 듯한 금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 드래곤이었나. 그래, 착각해서 미안하군. "
" 이제 제가 드래곤으로 보이시나 보네요. 하지만 아쉽네요, 아주 예쁜 풍경이었는데. "
" 이 허허벌판보다야 훨씬 아름답지. 보통 다른 이들은 그걸 알아채지 못하지만. "
" 어쩔 수 없죠. 이 곳은 평화와 아름다움보다 강한 것을 추구하는 거친 이들이 대부분인 세상입니다. "
드래곤은 들고 있던 포도가 든 바구니를 내려놓고 오벡스의 옆에 앉아 말을 이어갔다. 그 모습에 오벡스는 약간 짜증이 났다. 이 드래곤이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탓에 혼자서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가질 수 없었으니 말이다.
" 제 이름은 플로레에요. 그 쪽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죠? "
" 오벡스. "
" 안녕하세요, 오벡스. 아까 전의 그 풍경은 당신에게서 만들어진 건가요? "
" 그래. 내가 만들어 낸 상상의 공간이다. "
" 상상의 공간이요? 흥미롭네요. 그렇다면 다른 풍경도 만드실 수 있나요? "
설렁설렁 대답하던 오벡스는, 플로레가 자신의 공간에 관심을 가지자 기분이 조금 좋아져 태도를 조금 누그러트렸다.
" 물론. 내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 내 능력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하늘에 떠 있는 저 검은 신전도,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이 될 수 있었지. "
" 신기하군요.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저 곳이 그렇게 된다니, 저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갑니다.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에요. "
" 아름다웠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빛을 느끼고 몰려온 녀석들 때문에 오래 유지하진 못했지만. 드래곤이고 몬스터고, 날 좀 혼자 내버려두면 좋겠는데 말이지. "
플로레는 오벡스의 상상에 대해 더욱 흥미를 가졌다.
몽상가의 공간 안에서는 뭐든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빛으로 가득한 세상을 오벡스는 꿈꾸고 있었다.
그 안에서라면, 그는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해낼 수 있구나.
" 혼자 지내는 걸 바라시는 거라면, 외롭진 않으신가요. 혼자서 분리된 공간에 있다면요. "
" ...뭐지, 놀리려는 속셈인가? "
" 놀리는 건 아닙니다만, 동정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입니다.. "
" 나라고 해서 항상 한 곳에만 있는 건 아니다. 보기보다 여기저기 다니는 걸 좋아하는 몸이야. "
" 의외군요. "
째릿. 오벡스는 잠시 플로레를 노려보았다. 앗. 플로레가 재빨리 입을 가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 그다지. 애초에 이런 세상에서 태어난 이상, 나의 꿈을 알아주는 친구가 생길 거라는 기대는 없었어. "
" 꿈? 그 꿈이 무엇인지요. "
" 이런 것들이지. " ㅡ 오벡스가 손끝을 살짝 비비더니,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아, 빛이다. 오벡스의 꿈 속에 일렁이던 빛의 세상, 그 세상을 담은 공간들이 공중에서 둥둥 떠다녔다.
탐스런 과실이 열린 나무와 초록 풀잎들, 낡은 배를 품은 푸른 바다, 불꽃이 환한 빛을 내는 산, 세월에 풍화된 고요한 유적과, 황금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성전. 플로레는 놀란 표정으로 정육면체 공간 안에 담긴 세상을 바라보았다.
" 나는 항상 이런 것들을 꿈꿨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을. "
" ... "
" 이상하고 부자연스럽지, 안 그래? 하지만 내게는 어둠으로 가득한 현실 세계도 꿈처럼 이상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 안은 안전하고, 또 뭐든 가능한 곳이지. 그러니도 난 여기가 좋아. "
" 이상하긴 하네요, 부자연스럽고. 하지만, 아름답네요. "
플로레는 한참동안 그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다가 문득 오벡스를 바라보았다.
" 실례지만, 당신의 기억 속에서 그 모습을 직접 보아도 될까요. "
" 음? "
" 제게는 남의 기억을 읽는 힘이 있습니다. 그 때의 상황, 감정, 그 모든 것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죠. 부디 허락해주시길 바래요, 당신의 그 세계가 궁금합니다. "
" ... " ㅡ 오벡스는 처음에는 눈을 찌푸리며 플로레를 바라보았다. 기억을 읽는다니, 꺼림칙해.
하지만 자신의 공간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기뻤다. 고민하던 오벡스의 표정이 천천히 풀어지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는 움직임이 멈췄다. 플로레가 기억을 읽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벡스가 꿈꾸던 빛의 세상들 ㅡ 기억에 선명히 남은 것부터 오랫동안 되새겨지지 않아 희미해진 풍경까지, 하지만 어떠한 것도 잊혀지지는 않았다. ㅡ 과 지금의 삶, 해츨링과 해치 때의 삶, 그리고 알에서 태어나던 그 순간까지. 플로레는 모든 기억들을 가볍게 흝었다.
갓 태어났을 때의 기쁨, 처음 공간을 만들어 낸 성취감, 공격을 받았을 때 맞서 싸운 용기. 계속해서 빛을 찾아 나서는 끈기.
그리고 앞으로도 꺾이지 않고 빛 속에서 살 것이라는 의지.
이 몽상가는 이 세상에 너무나도 맞지 않는 이상한 드래곤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후회나 자기 연민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빛 속에서 자라 어른이 된 드래곤은 이렇게 되는 것일까? 플로레는 계속해서 생각하며 능력을 해제했다. 기억을 읽기 위해 우주의 힘을 쓰는 것은 몸에 무리가 상당했고, 아니나 다를까 순간적으로 비틀거릴 정도로 극심한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 ...?! "
오벡스는 영문을 모르는 당황한 표정으로 플로레를 올려다보았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에 절로 손이 나가 어깨를 붙잡으려 했다.
다행히도 그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플로레는 중심을 잡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오벡스는 머쓱한 듯이 손을 내리고 시선을 피했다.
" ...어땠나? "
" 나쁘지 않군요. 흥미롭고, 마음에 드네요. 늘 같은 공간만 만들어내시는 건가요? "
" 그건 아니다, 때에 따라 다르지. "
" 창의적이군요. "
" ... "
"...혹시라도, 삶을 바꾸고 싶지는 않나요? "
" 그게 무슨 소리지? "
" 현재 사는 삶에 불만이 있거나, 지나간 날을 후회한 적이 있나요? "
" ...글쎄. 이 세계는 불만을 가져봤자 들어주지 않는 곳이고, 무엇보다 내 꿈 속에선 모든 게 해결된다. 그러니 딱히 없어. "
아, 이 드래곤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언제든지 이룰 수 있었다. 나와는 달리.
플로레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 당신은 참 이상한 드래곤입니다. "
" 이상하지. 이 곳에 있는 모든 드래곤들이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다. "
" 혹시 모르죠, 누군가는 당신의 꿈을 긍정해줄 지도요. "
" 그럴 리가. 내 꿈은 단지 백일몽일 뿐이라고 다들 말하는데. "
" 당신의 공간에서는 그런 것조차 백일몽이 아니잖아요. 적어도 그 안에서는, 그 세계가 정말로 존재하니까요. "
" ...그렇군. "
그걸 잊고 있었다는 듯이 오벡스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자신의 공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플로레가 그것을 눈치채고 작게 키득이며, 내려놓았던 포도 바구니를 들었다.
"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 볼게요. 오랜만에 다른 드래곤들과 사적인 얘기를 하니 즐겁네요."
" 가는 건가? "
" 저는 당신처럼 여기저기 다니는 편은 아니라서, 그저 먹이를 찾으러 나왔을 뿐입니다. "
" 그런 거였나. 조심해서 가라. "
" 그 쪽도. " ㅡ 가벼운 작별 인사와 함께, 플로레가 자리를 떴다.
고작 몇 분 정도만 채워져 있던 옆자리였는데도, 비워지자 오벡스는 약간 허전함을 느꼈다. 그도 잠시였지만. 이내 다시 눈을 감고 빛의 세계를 상상한다.
아, 역시 혼자가 좋다. 조금은 쓸쓸해도 편안해.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몽상 속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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