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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빌리지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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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이렇게 좋은 아침

(※) 개인 해석 포함

(※) 좀 깁니다

 

 

공허의 심연이 사라진 어느 날 밤이었다.

격전의 처절함이 사라지고, 두 드래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떠났다. 언젠가 넷이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어렵게, 하지만 굳게 다짐한 채.

플로레는 멍하니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았다. 어저께, 어쩌면 그저께의 달처럼 예쁘게 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달빛과 밤바람을 요람 삼아 잠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정말 좋은 밤이니까.

하지만 이제 어쩌면 좋을까. 그동안은 운명이 가리키는 대로 행동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운명을 감히 거스른 대가로 플로레의 세번째 눈은 영원히 망가져버렸다.

어느 날 보았던 운명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시야가 흐려지고 귀에는 잡음 만이 들려오다가, 이내 자신의 몸이 쓰러진 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절대적인 운명이었다면 분명 플로레는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확히는, 다가올 운명에 대한 무력함과 무지함, 그것이 플로레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플로레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왜일까? 후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한 일은 분명 운명을 거스를 만한 가치가 있었다.

" ...그냥 모두 잊어버리라고 했잖아. "

문득, 적막 속에서 누군가의 한 마디가 울렸다. 어제처럼 플로레의 옆에 앉아있던 드래곤, 오벡스였다.

플로레가 고개를 돌리자 ㅡ 사실, 오벡스는 플로레보다 반은 작았으니, 고개를 내렸다고 하는 게 옳을 테지만. ㅡ 어제보다 흐려진 시선 속에 오벡스가 보였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평소처럼 차가운 표정과 사나운 눈빛을 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미묘하게 떨리는 보랏빛 눈동자는 선명히 보였다.

" ...무슨 의미인가요? "
" 내가 말했을 텐데, 내가 살기를 바라는 이유가 있으면 잊어버리라고. "

오벡스가 날이 선 태도를 애써 보이며 말했지만, 그래봤자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 ...날 왜 살린 거지? "
" 당신을 살리면 안되는 건가요? "
" 그건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텐데, 날 살리면 네가...!! " ㅡ 오벡스가 말을 멈췄다. 아니, 이 얘기는 하지 말자.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 어리석어... 도저히 이해가 안 가. "
" ... "
" 대체 왜 그런 거지? 왜 날 구하겠다고 나선 거야? 겨우 어젯밤에, 잠깐 얘기한 거 가지고 동정심이라도 생겼나?! 내가 분명... "

오벡스가 거의 소리를 지르듯 말하다가, 여러 감정들로 인해 말이 막혀 잠시 씩씩거렸다.

" ...그 날도 말했지만, 그저 제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어요, 오벡스. "

평소라면 말을 마저 하도록 기다려 주었겠지만, 플로레는 이번만 오벡스의 말에 끼어들기로 했다.

" 전 당신이 살기를 원했어요, 방금은 이유가 뭔지 물어보신 거죠? "
" ... "

그 날, 오벡스가 일부러 거리를 두기 위해 내뱉은 힘겨운 말을 떠올리며 플로레가 부드럽게 말했다.

" 아니면 이번에도 고개만 끄덕일까요? "
" ...됐어, 그 얘기는 하지 마. "

이 상황에 장난이 나오나? 오벡스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군. "

오벡스가 다시 한 번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이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왜 자신을 구했을까. 능력이 사라지면 남은 삶은 죽는 것만도 못할 것 같다고, 본인이 직접 말했으면서.

그리고 오랜 침묵. 텅 빈 공허의 심연은 바람 소리도 나지 않아 어색함만이 공중을 채웠다.

위로를 해야 할까, 아니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굴어볼까. 안심을 시켜줘야 할까, 아니면 잊어버린 척 태연하게 얘기해볼까.

" 미안하다. "
" 네? "

그런 어색한 분위기 사이에 끼어든 한 마디는 오벡스의 것이었다.

" ...그게 무슨 의미에요, 오벡스? 왜 갑자기... "

이유를 짐작했으면서도, 플로레가 복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벡스가 미안해 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된 건 전부 자신의 탓인데.

자신과 운명의 탓인데, 왜 오벡스가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가.

" 내가 어떤 식으로든 저항했다면, 하다 못해 버둥거리기라도 했다면 나았을 지도 모르지. "

오벡스는 플로레의 이마로 시선을 돌렸다. 깨지고 빛깔을 잃은 보석, 플로레가 자신을 살리는 대가로 망가진 세번째 눈이 그 곳에 있었다.

" 아니면 그 때, 날 구하려고 달려오는 너를 막았어야 했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나서서, 쓸데없이 머뭇거린 탓이지. 오벡스가 헛웃음치며 말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을 연다면 계속 미안하다고만 할 것 같아서.

오벡스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졌다, 심장이 무거워져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죄책감이었다, 살면서 거의 느껴본 적 없었던.

" ...당신이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요. "
" 하지만 그 때, 내가ㅡ "
" 그건 제 선택이었어요! 당신에게 운명을 말한 것도, 운명을 바꾸려고 한 것도... "

플로레가 다급하게 오벡스의 말에 반박하듯 대답했다.

" ...저였으니까요, 그게 왜 당신 탓이겠어요... "

플로레의 말이 끝나자, 오벡스는 놀란 표정으로 플로레를 보고 있었다.

이 드래곤이 이렇게나 격정적인 적이 있었나, 이러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 자책하지 마세요. 운명을 볼 수 없다고 해서 살아가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
" ... "
" ...무엇보다, 아직은 아예 못 쓸 정도도 아니에요. "

플로레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조용히 말했다. 괜찮다며 위로하는 말이었지만, 오벡스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이로 인해 어색한 분위기는 이내 침울하게 바뀌었다.

말하지 말 걸 그랬어, 괜히 땅을 발로 차는 소리가 잠시 울렸다.

" 오벡스는 이제 떠난다고 했나요? "
" ...그래. "

한참의 침묵을 또 다시 목소리가 깨트렸다. 이번에는 플로레의 것이었다.

" 오벡스가 여행을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 "
" 그닥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내 여행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
" 그럼 이번에도 무언가를 찾기 위한 건가요? "
" 그래. 꽤 멀리 갈 각오도 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어디에 있을지는 모르거든. "
" 그럼 오랫동안 못 보겠군요. 저도, 루시오랑 피데스도요. "

플로레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 새벽빛처럼 푸른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 피데스의 말이 맞아요, 헤어질 시간이 되니 아쉽네요. "

참으로 아쉬웠다. 말하는 것도 구분하는 것도 힘든 여러 이유들로 인해서, 하지만 섭섭하지는 않았다.

"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인데 그럴 필요가 있나? "
" 그래도, 한동안 만날 수 없다니 슬프지 않나요? 그게 언제일 지는 모르고요. "

예전이라면 알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모른다, 이마의 보랏빛 보석이 빛을 잃고 깨져버리니 미래가 흐려졌다.

하지만 어째선지, 현재는 어느 때보다도 맑아보였다. 플로레가 쿡쿡거리며 말했다.

" 비록 잘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전 제 생각보다도 당신을 많이 좋아했나 봐요. "
" ...허. 무슨 의미지? "
" 그냥 말해봤어요. 헤어진다는 것인 원래 슬픈 일인걸 알지만, 유독 당신한테는 더욱 그래서. "

오벡스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문득 즐거워져, 플로레가 물었다.

오벡스는 물끄러미 플로레를 바라보았다. 더는 운명을 알 수 없는데도 예전처럼 평온하고 차분했고, 오히려 들떠보이기까지 했다.

" ...이런 상황에 잘도 태연하게 있는군. "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아 괜히 퉁명스레 말했지만, 결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 네 목소리를 한동안 못 듣는다고 하니 아쉽긴 해. "

넌 목소리가 참 예뻤지, 그래서 계속 듣고 싶었는데. 오벡스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 칭찬인가요? "
" ...보면 모르나? "
" 후후.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할 줄 알았어요. "

계속되는 실 없는 이야기 덕에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사실, 예전보다도 더 즐거웠다.

두 드래곤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공허의 심연 속 영원할 것 같았던 어둠이 걷히고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

천천히, 서서히, 하지만 환하게 들어오는 햇빛에 오벡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빛을 가렸다.

" ...시간이 꽤 지났나 보군. "
" 그러게요.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이 곳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시간은 천천히 흘렀는데. "

플로레가 앉아있던 바위에서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들어올 때도 분명 아침이었는데,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가다니.

" 너, 사는 곳이 어디지? "
" 네? "

그런 플로레를 따라 일어난 오벡스가 물었다.

" 네가 괜찮다면, 그 곳까지 바래다 줄 수 있다. "

오벡스가 잠시 주저하다가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남에게 손을 내밀거나 잡은 적이 없었으니 어색했지만, 그만큼 애정이 담겨있었다.

" ...물론이죠. "

플로레가 부드럽게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 가시나무 숲 안의 거대한 고목 근처에서 지내고 있어요, 특이한 색의 꽃이 피어있으니 찾기 쉬울 겁니다. "
" 참 멀리도 있군. ...그리고 위험하고. "
" 알에서 깨어날 때부터 살았는 걸요, 그 정도는 괜찮아요. "

두 드래곤은 공허의 심연 밖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계속 얘기를 나누었다. 분명 들어올 때는 너무나도 길었는데, 지금은 처음보다 훨씬 짧게 느껴졌다.

" 그래도 언젠가 여행을 떠나보고도 싶어요. 피데스나 루시오, 그리고 당신이 사는 곳도 가보고 싶네요, 오벡스. "
" 별로 좋을 건 없을 거다,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묘해지는 곳이거든. "
" 그래도 가보고 싶네요, 당신이 거기 있다면요. "
"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같이 있겠다고는 약속하지. "
" 고마워요. "

점점 퍼져나가는 아침 햇살이 플로레의 얼굴을 비추었다, 부드럽고 환한 미소. 오벡스는 급하게 자신의 얼굴도 비추려 드는 빛을 손으로 막았다.

이래서 빛은 싫다. 보이고 싶지 않아도, 보이게 만들잖아.

공허의 심연을 빠져나오는 두 드래곤은 웃고 있었다. 좋은 아침,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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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같은 아쉬움 이후의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었는데, 정신차리니 플로레&오벡스 중심의 글이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시크레타가 아니라 다른 애정하는 애들로 써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멜로우나 프레임이나 에브폼 시크레타나...

 

그나저나 요즘 플로레랑 오벡스 조합이 많이 보이네요, 매우 행복합니다 흐흐...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더 생겼으면 좋겠어요.

 

아무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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